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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과...

"스노우맨" - 무대에서 만나는 눈사람과의 추억

예술의 전당 소식지인 예술로에 원종원 교수님이 연재한 글인데 좋아서 원문 올립니다.
동화소설이 원작인 스노우맨. 누구나 한번쯤은 이 스노우맨을 접해봤을 것입니다. 파스텔 톤의  KFC아저씨보다 더욱 친근(^^)하고 포근한... 어렸을때의 동심을 마구마구 일으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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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2009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재개관 기념 페스티벌
스노우맨
무대에서 만나는 눈사람과의 추억
2009. 3. 28(토)-4.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간밤에 소복이 눈이 내렸다. 초등학생 막내 녀석이 눈을 뜨자마자 장갑과 털모자를 찾으며 밖으로 나가겠다고 법석이다.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때우고 나가더니 아파트 놀이터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눈사람 좋아하는 것이 비단 우리 집 아이들만 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사람은 어린아이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경이요, 희망이다. 대중문화 속 콘텐츠들도 마찬가지다. 눈에 얽힌 아이콘들은 물론 하얗고, 친근하며, 부드럽고, 환상적이다.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꼬마 눈사람’ 동요에서부터 죽은 아버지가 환생해 눈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영화 <잭 프로스트Jack Frost>, 눈을 형상화해 무대에서 갖가지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구舊 소련의 어릿광대 예술가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 쇼Snowshow>나 이를 압축해 놓은 캐나다 서커스 <알레그리아Alegria>의 1막 마지막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번에 첫 내한무대를 꾸밀 예정인 영국산産 가족극 <스노우맨The Snowman>도 오래 기억에 남을 눈과 눈사람 소재의 따뜻한 공연물이다.

<스노우맨>의 시작은 동화책이었다. 영국 극작가 레이몬드 브릭스가 1978년 발표한 아동용 출간물이었는데, 세계 각지에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이루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사람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번안됐는데,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그림체와 눈사람과 함께 하늘로 날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산타클로스나 세계 각국에서 온 눈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발한 상상력이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아침 햇살에 녹아버린 눈사람 아저씨와의 아련한 이별은 여운이 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원작의 스토리가 대중적으로 큰 인지도를 획득하게 데에는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크다. 1982년 만화영화 제작사 TVC와 영국의 공중파TV 채널인 채널 4가 공동으로 26분 길이의 <스노우맨>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송된 이 만화영화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영상물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영국 텔레비전에서 재방송되는 단골 특집물이다. 책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연하기 위해 만화영화는 대사 없이 음악과 이미지 위주로 스토리를 전개했다. 오직 등장하는 ‘말’이라고는 주제가격인 ‘하늘을 걷다(Walking in the air)’가 흘러나올 때 불려지는 노랫말이 유일한데, 이 같은 희소성은 오히려 음악의 대중적 흥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노래는 런던에 위치한 세인트 폴(성 바오로) 성당의 코러스 보이였던 피터 오티Peter Auty가 불렀는데, 11살의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듯한 미성이 대중들로부터 큰 공명을 일으켰다(그는 이후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게 되는데, 1969년 태생이니 만화영화의 팬들로서는 아쉽지만 이젠 40대의 중견 예술인이 다 되었다). 또한 환상적인 멜로디는 하워드 블레이크의 음악적 산물이었는데, 그는 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모든 음악을 작사·작곡하고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담당하는 등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노우맨>이 무대 버전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하워드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큰 몫을 했다. 만화영화의 대중적 흥행을 기반으로 이듬해인 1983년에는 내레이션이 첨가된 콘서트 버전이 무대에 올려졌고, 이를 계기로 제작된 음반이 1988년 플래티넘 앨범이 되는 흥행을 기록했다. 1990년대에는 발레 버전의 <스노우맨>이 시도되기도 했는데, 만화영화의 음악에 30분 가량의 새 음악들을 덧입혀 양적으로 더욱 풍성한 외형을 갖추게 됐다. 지금의 가족극은 1997년 버전으로 발레 안무에 하워드, 제작에 로버트 노스, 연출에 빌 알렉산더 등이 가세하여 버밍엄 레퍼토리 극장 무대에 올려진 스테이지쇼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미 영화가 익숙한 대중들은 무대에 형상화된 <스노우맨>에 크게 열광했고, 영화사에 의해 영상 기록물로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책이 만화영화가 되고 발레나 가족극으로 변신하며, 다시 필름용 기록영화가 되는 현대 문화산업에 나타나는 원 소스 멀트 유즈(One Source Multi Use) 현상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라 할 만 하다. <스노우맨>은 지금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웨스트엔드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인기 레퍼토리다.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2000년대 들어 더욱 보강된 버전의 공연으로 성장했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 2막에서는 새롭게 더해진 스토리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무대를 꾸미는 변화가 더해졌다. 악역 잭 프로스트(우리말로 하자면 ‘동장군’이나 ‘엄동설한’쯤 된다)나 아이스 프린세스(얼음공주)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보완이 된 셈이다. 단순히 아동극으로만 생각한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는 절반에 불과하다. 물론 발레 인형, 장난감, 춤추는 펭귄, 순록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들의 등장, 순수와 아름다움 같은 감성적 메시지들,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라인이 특색이긴 하지만, <스노우맨>은 온 가족이 함께 극장을 찾아 예술적 체험을 공유할 만한 공연이라는데 진정한 매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른 관객도 동심으로 돌아가 살포시 미소 짓게 되는 게 감상 포인트인 셈이다. 특히 ‘하늘을 걷다’가 연주되며 스노우맨이 소년과 함께 와이어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플라잉 씬은 눈이 내리는 조명효과와 함께 늘 박수와 감탄을 자아내는 이 공연의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스노우맨>이 오페라극장에서 효과적으로 재연될 수만 있다면 흥행이나 예술성이 검증된 무대를 직접 만나보는 재미가 놓치지 아쉬운 작품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모쪼록 이번 내한 공연이 좋은 가족 나들이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이미지의 가족극이 경제위기로 얼어붙은 대한민국 ‘보통’ 가족들의 쓸쓸한 마음에 포근한 위안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글 _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사진 제공 _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