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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은 다빈치 : 반달리즘 Vandalism -김주삼 (미술품복원가·artC&R 연구소 소장)

칼리우마 2009. 3. 5. 23:35

월간정보지-"예술에 전당"에 김주삼 님이 쓰신 글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기사같아서 스크랩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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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세계의 숨겨진 이야기

총 맞은 다빈치 : 

반달리즘 Vandalism



요즈음 가수 백지영이 부른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인기다. 제목이 조금 과격해 보여서인지 출반 때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 노래의 내용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총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내용이다. 죽음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의 상징이라서 이 노래의 비유로 총이 사용된 것 같다. ‘총 맞으면 정말 아프겠지?’라고 묻자 옆 사람이 ‘오죽 아프면 죽겠어’라 하던 허무개그가 생각이 난다. 미술품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수명이 다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실제 총격을 받았던 다빈치의 사례를 비롯하여 고의적으로 미술품에 가해지는 여러 유형의 파괴 행위와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987년 여름, 실직한 퇴역 군인 한 명이 품속에 총을 감추고 런던의 갤러리와 미술관을 차례로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미술품에 총을 쏠 목적으로 조용하고 관람객의 출입이 뜸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여름은 미술관에 관람객들이 매우 북적이는 시기이므로 기회를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드디어 7월 17일, 그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서 낮 시간 내내 서성대다가 관람객이 뜸해지는 폐관 5분 전에 숨기고 있었던 총을 꺼내 다빈치의 ‘세례자 요한과 성 안느와 함께 있는 성모자상’에 총격을 가했다. 총성을 듣고 곧바로 경비원들이 달려 왔고 이 범인은 저항은커녕 도망갈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림에 날아든 총알은 성모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비록 총알은 그림을 보호하고 있던 방탄유리 덕에 그림에 직접 도달하지는 않았으나 총알의 압력으로 유리가 분말화되면서 그림표면에 반경 15cm정도 되는 상처를 입혔다. 오히려 총알이 관통하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힌 셈이다. 이 범인의 범행동기는 특별한 것은 없었으나 재판 후에 정신병원에 무기한 감금되는 형을 받았다. 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다빈치의 몇 안 되는 작품이 파손되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미술품의 고의적인 파괴, 반달리즘

우리 국민들도 얼마 전 국보 1호인 남대문을 한 사람의 방화로 한순간에 잃는 깊은 슬픔을 경험하였다. 더욱 화가 나는 일은 이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이의 범행동기가 국가의 토지 보상금과 관련한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의적인 파괴행위의 동기는 앞서 다빈치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파괴행위는 온·습도 변화, 천재지변 등과 같은 문화재의 파손의 원인들과는 달리 방어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문화재에 대한 이러한 파괴행위를 특별히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부른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예술품을 무의식적으로 손상을 입히거나 그럴 시도를 뜻한다. 이 말의 어원은 단어 자체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까지 약탈과 파괴를 거듭한 일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현재와 같은 의미로 처음 쓰이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 때이다. 그레고리라는 가톨릭 신부가 일부 혁명군들이 구왕정의 예술적인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예술품에 대한 파괴행위, 즉 반달리즘의 유형을 분류해 보면 실로 다양하다. 특정 작품으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는다거나 정서적인 문제로 인해 파괴하는 행위, 위협적인 행동을 했을 때 만족을 얻는 정신 이상자의 행위, 사회나 체제에 대한 분풀이, 미성년자가 단순히 장난이나 파괴를 통해 이름을 내보겠다는 영웅심리, 편협한 종교관, 예술작품에 대한 몰이해,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범하게 되는 파괴행위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 자체가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파괴행위를 두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무의미해질 때도 많다. 너무나 잘 알려진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은 1976년 망치를 든 남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심하게 훼손된 적이 있으며 루벤스의 한 작품은 약품으로 공격을 받아 그림 중앙 부위의 물감이 거의 소멸되는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국내에도 다녀간 바가 있는 유명한 밀레의 ‘만종’도 비록 복원이 되어서 상처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1930년대에 칼질을 당해 무참히 파괴되었던 작품이다. 화풀이로 미운 사람의 초상화에 테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정서상의 문제나 사회에 대한 분풀이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청소년 몇 명이 침입하여 모네의 작품에 주먹을 날려 구멍을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작품의 일부분을 떼어내거나 낙서하는 행위 등은 정서가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영웅심리가 작용한 파괴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편협한 종교관에 의한 파괴행위는 보다 조직적이고 규모가 크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의 걸작인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대불이 이슬람교도에 의해 대포와 다이너마이트로 조직적으로 파괴된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슈화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스갯소리로 경주 남산에 목과 코가 제대로 붙어 있는 부처님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우상 처단의 취지 하에 부처의 목을 치는 행위, 부처의 코를 갉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헛된 미신에 의한 파괴행위가 아직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술의 몰이해에 의한 파괴대상은 주로 현대미술품에 국한되어 있다. 현대미술품은 고전적인 작품에 비해 보다 자극적이고 고정관념을 넘는 다양한 시도로 인해 자주 의도적인 파괴의 희생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버넷트 뉴먼의 작품은 동일한 사람에게 단순히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예리한 칼로 난도질당하는 수난을 당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도 마크 로스코의 5개나 되는 작품들이 Z형태로 칼질을 당한 바 있다. 라인하르트의 작품 위에 미키 마우스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거나 심지어 싸이 톰블리 작품에 입을 맞추어 립스틱 자국을 작품에 남기는 일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입술 자국을 낸 여자는 자신의 행위가 예술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오히려 항변하였다. 퐁피두에서 마르셀 듀샹의 작품에 흠집을 낸 범인도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톰블리와 듀샹의 경우는 파괴범의 신분이며, 자신의 행위는 예술 작업의 일환으로 원래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하였노라 주장하는 경우이다.


일반관람객의 무의식적인 미술품 훼손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유형들처럼 작품을 훼손하고자 작정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반 관람객이 무심코 손을 대어서 작품에 상상 외로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퐁피두 소장의 보이스 작품 중 펠트천으로 쌓여 있는 피아노의 경우는 관람객이 피아노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건반부분을 건드려 펠트천이 심하게 마모된 적이 있었다. 황동조각품은 관람객의 손에 있는 염분으로 인해 손이 닿은 부분이 부식되어 검게 변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리석이나 테라코타 등으로 된 작품의 경우 돌출부가 검게 색이 변한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데 특히 여자 누드의 돌출부가 특히 심하게 변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작품에 손을 댈 경우 손에 남아 있는 기름 때 등이 스며들어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랜 기간 방치할 경우 제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세계 유명 미술관이나 유적지에서 이처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미술품의 파괴행위, 즉 반달리즘 행위는 도난사건 만큼이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술관의 작품들은 전시를 위해 관람객에게 노출되어 있다. 관람객이 작품에 접근하면 울리게 되어 있는 경보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설사 주위에 안전요원이 있더라도 관람객이 마음만 먹으면 작품에 손을 대거나 흉기를 이용해서 작품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반달리즘으로부터 미술품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미술품을 손상시킨 사람들에게는 분명 금전적인 배상이나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다. 감시 요원을 늘이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나 아무리 지키는 사람이 많아도 관람 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공격을 막을 수도 없고 또한 인건비의 부담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뾰족한 답을 구할 수 없는 게 미술관 직원들과 문화재 보존분야 종사자들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작품 옆에 ‘관람객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미술품이 아파요’라는 표어라도 붙여야 할까?



글·사진 제공 _ 김주삼 (미술품복원가·artC&R 연구소 소장)